생일날 시험장에서 모카빵을 만났다 - 제빵기능사 합격 후기
2026.10.06
지난 내 생일 날, 나는 시험장에서 가장 만나기 싫었던 모카빵을 만났다.
시작은 소금빵이었다
지난 7월부터 두 달 정도, 집 앞에 있는 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제빵기능사(야간) 자격증 반을 수강했다. 마침 아내도 같은 시간에 한식조리기능사 수업이 있었다. 수업 가기 귀찮은 날에도 아내랑 같이 집에서 나갔기 때문에,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던 하루를 빼고는 수업에 다 참여할 수 있었다. 아내 수업이 2주 정도 먼저 끝나서 마지막엔 혼자 가야 했는데, 그게 참 쉽지 않았다.
그 무렵 어깨, 등, 허리가 아파서 한의원을 다니고 있었는데, 제빵 수업을 듣고 온 날에는 어김없이 등이 뻐근했다. 빵을 만드는 것을 직업으로 갖기에는 내 몸이 못따라오지 않을까 싶다.
소금빵을 좋아하던 나는 언젠가 직접 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. 대학생 방학 기간이라 선교단체 사역에도 여유가 있었으니, 배워보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.(참고로 제빵기능사 시험 목록에 소금빵은 없다. 그래서 나는 아직도 소금빵 만드는 법을 모른다.)
맛있었던 빵
수업은 4명이 한 조가 되어, 그날의 빵을 반죽부터 발효, 성형, 굽기까지 시험에서 해야 하는 전 과정을 연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. 완성된 빵은 조원들끼리 나눠 가져갔는데, 맛있고 양까지 많은 날에는 가족들, 회사 사람들과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. 내 원픽은 단팥빵이었다. 수업을 듣는 동안 우리 집에는 빵이 가득했다.
우리 조에는 제과기능사까지 준비하시는(그리고 합격하신) 분들도 있었다.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다들 열심인 분들이라, 나도 덩달아 열심을 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. 감사한 일이다.
필기: 계산 문제만 다 맞히자
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따려면 필기와 실기 모두 6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. 수업에서 필기는 따로 다루지 않아서 혼자 준비해야 했다.
다행히 대학 시절 공학을 공부한 덕을 좀 본 것 같다. 물 온도, 반죽 온도, 수율 같은 계산 문제가 종종 나오는데(아마 많은 분이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다), 나에게는 오히려 득점 포인트였다. 그래서 내 전략은 '계산 문제는 다 맞히고, 나머지 암기 문제(꽤 많다…)는 잘 찍어서 60점만 넘기자.' 였다.
기출 문제로 3일 정도 공부하고, 시험 당일 아침에는 3시간짜리 제빵 필기 유튜브 영상을 보며 마무리했다. 결과는 66점으로 합격이었다.
실기: 필기 붙었는데 안 보면 아깝잖아
필기를 붙고 나니 실기까지 안 보면 아깝지 않겠는가? 실기 시험은 강의가 완전히 끝나게 되는 바로 다음 일정으로 잡았다. 연차를 쓰고 갔고, 하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.(다음부터는 가능하면 생일에 시험을 보지 않으려고 한다.)
효율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내가 시험 볼 서울동부국가자격시험장에서 어떤 순서로 문제가 나오고 있는지 최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해보았으나, 정말 랜덤이었고, 연속되는 시험의 회차 안에서는 이미 나왔던거는 안나온다고 볼 수 있었지만, 결과적으로 크게 의미는 없었다.
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장비도 재료도 없으니 추가 연습은 어려웠고, 대신 이미지 트레이닝을 구체적으로, 반복해서 했다. 스무개 정도 되는 빵마다 다른 굽기 온도/시간을 외우는 게 어려워서 클로드 아티팩트로 암기 툴까지 만들었는데, 결국 나는 이런 건 종이에 직접 써야 외워지는 사람이라는 것만 깨달았다. 눈으로만 보고 외울 만큼 머리가 좋지는 않은가 보다.
하필, 모카빵
수업 때부터 실기에서 제일 안 나왔으면 했던 빵이 모카빵이었다. 모카빵은 다른 빵과 달리 반죽 위에 얹을 토핑 반죽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, 이 토핑 반죽에 영 자신이 없었다. 수업 때는 "모카빵 나오면 그냥 떨어지자"고 생각했을 정도였다.
그리고 안타깝게도, 내 실기 과목은 모카빵이었다.
'60점만 넘으면 된다. 포기만 하지 말자.' 그렇게 마음먹고 시험을 시작했다.
계량. 첫 단계는 재료 계량이다. 재료를 작업대로 가져와 2g 오차 이내로 달아야 한다. 재료당 1분이라 넉넉하다고 생각했는데,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시간이 줄줄 새었다. 종료 시간에 딱 맞춰 겨우 끝냈다.(심장이 엄청 뛰었다)
반죽. 수업 때 쓰던 반죽기와 시험장 반죽기가 달라서 살짝 당황했고, 글루텐도 생각보다 잘 안 잡혀서 또 당황했다. 모카빵은 반죽 마지막에 건포도를 섞어야 하는데, 이 건포도도 정말 안 섞였다. 어찌어찌 반죽을 완성해 심사위원에게 반죽 온도를 확인받고(온도 신경은 안썼는데 27도에 어느정도 맞았던 것 같다) 1차 발효에 들어갔다.
토핑. 다른 빵이라면 이때 한숨 돌릴 수 있지만, 모카빵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. 토핑 반죽을 만들려면 버터를 풀어야 하는데 버터가 너무 차가워서 스텐볼을 열심히 내려치며 풀었다. 재료들을 차례차례 잘 섞고 반죽을 진행했고, 그래도 토핑 반죽을 냉동실에 넣어 휴지시키기 시작한 건 거의 1등이었다.
팬닝. 1차 발효 후 분할과 둥글리기를 하고, 중간 발효 동안 토핑을 나눴다. 이제 한 판에 3개씩, 두 판에 총 6개를 올려 2차 발효를 하면 된다. 그런데 나는 처음에 한 판에 다 올려야 한다고 착각해서 4개까지 올렸다가, "이건 한 판에 절대 안 되겠다" 싶어 나머지 2개만 두 번째 판에 올렸다.
이게 가장 큰 실수였다.
굽기. 2차 발효를 마치고 25분 정도 구워 꺼내보니, 4개를 빽빽하게 올린 판은 빵끼리 너무 붙어 있어서 빵과 빵 사이의 공간에 열이 잘 못들어갔던 모양이다. 그래서 토핑 옆면이 덜 익어 있었다. 더 구우면 윗면이 탈 것 같아서 그대로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.
어려운 과정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고, 오븐 온도와 시간도 외운 대로 했는데, 마지막에 팬닝 실수를 발견하니 크게 낙심이 됐다. 시험장을 나서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. "그래도 60점만 넘으면 되는데… 어떻게 안 되려나?" 그렇게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갔다.
발표 날, 아내의 무표정
발표 날 아침, 결과는 아내에게 먼저 확인해 달라고 했다. 나는 아내의 표정만 살폈다.
아내는 무표정이었다. 나를 웃기려고 그런 거였다. 합격이었다.
빵으로 누군가를 섬길 수 있다면
요즘 종종 생각한다. 나는 언제까지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을까. 만약 개발자를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까. 나는 어떤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될 때 기쁨을 느끼는 편이다. 그런 면에서 빵을 만들어 나누는 일은, 모든 사람이 겪는 가장 일차적인 문제인 배고픔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.
최고의 제빵사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. 그래도 언젠가 앞으로의 삶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. 적어도 빵 하나를 만드는 데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고, 그 과정이 꽤 고되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.
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험은 아니었지만, 오랜만에 정말 많이 긴장했던 시험이었다. 앞으로 이 제빵기능사 자격증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어떻게 쓰일지 기대가 된다.
그리고 언젠가는, 소금빵도 만들어 보고 싶다.